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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좁쌀,팝콘
2007/12/08 21:30 in 분류없음 | Tags: 동물존중, 애완견, 좁쌀, 콩, 팝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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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는 콩순이와 좁쌀이 팝콘이라는 세 강아지가 있다.
콩순이는 내가 14살때 우리집으로 온 엄마젖을 이제 막 뗀 작은 강아지다.(믹스 요크셔+말티즈 당시 생후 40일)
그리고 그 후 2번째 발정기때 숫컷 말티즈를 만나 첫 아이를 낳은게 좁쌀이였다.
그때 사실 2마리의 강아지를 낳았는데 한마리가 태어나자 마자 죽었다. 그래서 한동안 콩순이는 죽은 새끼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나는 삑삑거리는 장난감 공을 물고 집안 여기저기를 배회하며 울었다.
지금의 좁쌀이와 콩순이는 나와 엄마와 같은, (대부분의 모녀와 같이)애증의 관계다. 좁쌀이는 유난히 작은 덩치에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콩순이와는 달리 이성에게 관심도 없었다. 그렇다고 동성에게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였고 엄마와의 서열관계에만 몰두하고 어떡하면 우리 가족에게 더 사랑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강아지였다. 그리고 그에 비해 콩순이는 이성에게 무척 관심이 있었고 발정기가 되면 견디질 못했다. 그래서 길에 돌아다니던 말티즈와 교배해서 우리 팝콘이를 낳았다(또 여자-_-)
그래도 콩순이는 아무 남자나 만나지 않고 잘생기고 어린 강아지만 좋아했는데, 강아지 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그게 적용된다.
산책을 데리고 나가면 늙은 아저씨와 할아버지들에게는 내가 민망할 정도로 마구 짖어대고 젊은 오빠나 고등학생 남자애들에겐 꼬리 살랑거리며 나에겐 좀처럼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_-;(여자애들에겐 네버.네버.네버)
정말 이 강아지가 인간남자의 외모와 사회적 지위(-_-;어떻게 눈치까는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차별한다)를 보는건가 궁금해서 잘생긴 친구와 그에 비해 잘생기지 않은 친구를 차례차례 보여준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잘생긴 친구에겐 사랑에 빠진듯한 눈밑으로 무릎위에 올라가서 앞발로 그 친구 얼굴을 더듬고 폭 안겨있는 등 눈꼴시린 광경 연출. 거기다 친구가 가고나자 울부짖고 난리가 났다.
나중에 상대적으로 안 잘생긴 친구를 보여주니까 마구 짖어대며 경계하다 나중엔 관심도 안가졌다.
그에 비해서 마지막으로 태어난 팝콘이도 벌써 2번정도 발정기가 왔는대도 전혀 이성에게 관심없이 천진난만. 좁쌀이는 천진난만은 아니지만 너무 진지-_-해서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강아지라는 동물이 정말로 사람의 습성과 언행과 생각을 닮아가고 있기도 하고, 사람처럼 개인(?)마다 고유한 특성이 다르다는걸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엔 사람과 같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라면도 나눠먹고 아이스크림도 나눠먹고 잠도 같이 자고 산책도 많이 시키는 등 절대 존중해줬다. 그러자 콩순이는 애견용 사료는 입에도 안대고 우리랑 같은 밥만 먹으려 했고 시도때도 없이 산책을 나가겠다고 졸라댔다. 그 뿐아니라 완전히 공주가 되어서 엄마 외의 우리 가족을 모두 무시하고 물기도 했고, 절대 맨 방바닥에 눕지 않았으며 같이 잠을 잤더니 내 침대를 자기침대로 착각하고 거기서 팝콘이를 낳았다-_-;
★ 그래서 동물존중의 선이라는게 어디까지인가 하는 고민을 항상 하게 된다. 아빠가 강아지를 무시하는 것은 방어하고 경계해야 하는 지점이지만, 같이 잠을 자고 음식을 나눠먹고 항상 같이 생활할 경우 어느정도의 선을 그어 놓지 않으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동물을 존중한다고 해서 사람과 '똑같이' 대해주며 사람의 기준에서 잘 해주는 것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이럴 경우 갈등의 골은 깊어져만 간다는 걸 알기 바란다.
애완견을 산다, 혹은 기른다는 것은 컴퓨터나 자동차를 산다는 것이나 애인을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물론 애인을 만들때도 평생 함께할 각오를 할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때도 있듯 천차만별이지만 동물과 함께 한다는 것은 삶의 새로운 요소가 생기는 것 만으로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동물의 경우는 나의 손길이 없이는 절대로 인간과 공존이 가능치 않다. 그래서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누군가와 평생 함께할 각오를 해야 한다. 동물의 터전을 만들어주고 그들이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생활할 수 있는 곳에서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면, 동물을 기르겠다는 결심은 마치 아이를 가지겠다는 맘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이를 만들고 가지고 키우는 과정이 비교도 안되게 대단하고 힘든 일이란건 알고 있지만, 아이는 자라고 나면 자립 할 수 있다.(물론--;안그런 사람도 있지만)
하지만 동물의 경우는 죽을 때까지 나의 손길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터전이 아니라 우리의 터전에 있기 때문에 밥 먹는 것부터 똥을 누고 처리 하는 것까지 하나하나 우리의 관리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지배적인 입장에 서서 굉장히 권위적인 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매우 고생스럽고 조건없이 베풀어야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전에 대단한 결심을 가져야 하며, 그들을 어떻게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지 그들에게 어떤 삶을 제공해 줄 수 이고 어떤 대우를 해 줄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아이를 갖는 것만큼 큰 결심과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는 우리 강아지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사실 한편으론 그들에게 연민도 가지고 있다. 집안에 사람이 없을 때 얼마나 무료할까가 가장 큰 연민이다.
그것 외에도 나는 이들의 삶의 목표는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하지만 얘네들은 거의 우리의 가족과 같아져서-_-; 서로에게 무뎌지고 만다. 똥을 치우기 싫어서 괜한 신경질을 내기도 하고 몇날몇일 산책을 안 시키기도 한다. 이런 부분에서 나는 위에 처럼 큰 결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강아지라는 동물은 나같이 산책도 잘 안시켜주는 사람까지도 조건없이 따르며, 우리의 모든 부분을 수용해 주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동물이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 부터 강아지와 함께 자란 사람의 정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까 상상한다. 그리고 그런 동물들에게 감사하며 우리 강아지들을 위해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이제부터라도 생각해 본다.
좁쌀<4살>, 팝콘<1년 5개월>, 콩<5살>
콩순이는 내가 14살때 우리집으로 온 엄마젖을 이제 막 뗀 작은 강아지다.(믹스 요크셔+말티즈 당시 생후 40일)
그리고 그 후 2번째 발정기때 숫컷 말티즈를 만나 첫 아이를 낳은게 좁쌀이였다.
그때 사실 2마리의 강아지를 낳았는데 한마리가 태어나자 마자 죽었다. 그래서 한동안 콩순이는 죽은 새끼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나는 삑삑거리는 장난감 공을 물고 집안 여기저기를 배회하며 울었다.
지금의 좁쌀이와 콩순이는 나와 엄마와 같은, (대부분의 모녀와 같이)애증의 관계다. 좁쌀이는 유난히 작은 덩치에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콩순이와는 달리 이성에게 관심도 없었다. 그렇다고 동성에게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였고 엄마와의 서열관계에만 몰두하고 어떡하면 우리 가족에게 더 사랑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강아지였다. 그리고 그에 비해 콩순이는 이성에게 무척 관심이 있었고 발정기가 되면 견디질 못했다. 그래서 길에 돌아다니던 말티즈와 교배해서 우리 팝콘이를 낳았다(또 여자-_-)
그래도 콩순이는 아무 남자나 만나지 않고 잘생기고 어린 강아지만 좋아했는데, 강아지 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그게 적용된다.
산책을 데리고 나가면 늙은 아저씨와 할아버지들에게는 내가 민망할 정도로 마구 짖어대고 젊은 오빠나 고등학생 남자애들에겐 꼬리 살랑거리며 나에겐 좀처럼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_-;(여자애들에겐 네버.네버.네버)
정말 이 강아지가 인간남자의 외모와 사회적 지위(-_-;어떻게 눈치까는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차별한다)를 보는건가 궁금해서 잘생긴 친구와 그에 비해 잘생기지 않은 친구를 차례차례 보여준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잘생긴 친구에겐 사랑에 빠진듯한 눈밑으로 무릎위에 올라가서 앞발로 그 친구 얼굴을 더듬고 폭 안겨있는 등 눈꼴시린 광경 연출. 거기다 친구가 가고나자 울부짖고 난리가 났다.
나중에 상대적으로 안 잘생긴 친구를 보여주니까 마구 짖어대며 경계하다 나중엔 관심도 안가졌다.
그에 비해서 마지막으로 태어난 팝콘이도 벌써 2번정도 발정기가 왔는대도 전혀 이성에게 관심없이 천진난만. 좁쌀이는 천진난만은 아니지만 너무 진지-_-해서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강아지라는 동물이 정말로 사람의 습성과 언행과 생각을 닮아가고 있기도 하고, 사람처럼 개인(?)마다 고유한 특성이 다르다는걸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엔 사람과 같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라면도 나눠먹고 아이스크림도 나눠먹고 잠도 같이 자고 산책도 많이 시키는 등 절대 존중해줬다. 그러자 콩순이는 애견용 사료는 입에도 안대고 우리랑 같은 밥만 먹으려 했고 시도때도 없이 산책을 나가겠다고 졸라댔다. 그 뿐아니라 완전히 공주가 되어서 엄마 외의 우리 가족을 모두 무시하고 물기도 했고, 절대 맨 방바닥에 눕지 않았으며 같이 잠을 잤더니 내 침대를 자기침대로 착각하고 거기서 팝콘이를 낳았다-_-;
★ 그래서 동물존중의 선이라는게 어디까지인가 하는 고민을 항상 하게 된다. 아빠가 강아지를 무시하는 것은 방어하고 경계해야 하는 지점이지만, 같이 잠을 자고 음식을 나눠먹고 항상 같이 생활할 경우 어느정도의 선을 그어 놓지 않으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동물을 존중한다고 해서 사람과 '똑같이' 대해주며 사람의 기준에서 잘 해주는 것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이럴 경우 갈등의 골은 깊어져만 간다는 걸 알기 바란다.
애완견을 산다, 혹은 기른다는 것은 컴퓨터나 자동차를 산다는 것이나 애인을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물론 애인을 만들때도 평생 함께할 각오를 할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때도 있듯 천차만별이지만 동물과 함께 한다는 것은 삶의 새로운 요소가 생기는 것 만으로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동물의 경우는 나의 손길이 없이는 절대로 인간과 공존이 가능치 않다. 그래서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누군가와 평생 함께할 각오를 해야 한다. 동물의 터전을 만들어주고 그들이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생활할 수 있는 곳에서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면, 동물을 기르겠다는 결심은 마치 아이를 가지겠다는 맘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이를 만들고 가지고 키우는 과정이 비교도 안되게 대단하고 힘든 일이란건 알고 있지만, 아이는 자라고 나면 자립 할 수 있다.(물론--;안그런 사람도 있지만)
하지만 동물의 경우는 죽을 때까지 나의 손길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터전이 아니라 우리의 터전에 있기 때문에 밥 먹는 것부터 똥을 누고 처리 하는 것까지 하나하나 우리의 관리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지배적인 입장에 서서 굉장히 권위적인 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매우 고생스럽고 조건없이 베풀어야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전에 대단한 결심을 가져야 하며, 그들을 어떻게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지 그들에게 어떤 삶을 제공해 줄 수 이고 어떤 대우를 해 줄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아이를 갖는 것만큼 큰 결심과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는 우리 강아지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사실 한편으론 그들에게 연민도 가지고 있다. 집안에 사람이 없을 때 얼마나 무료할까가 가장 큰 연민이다.
그것 외에도 나는 이들의 삶의 목표는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하지만 얘네들은 거의 우리의 가족과 같아져서-_-; 서로에게 무뎌지고 만다. 똥을 치우기 싫어서 괜한 신경질을 내기도 하고 몇날몇일 산책을 안 시키기도 한다. 이런 부분에서 나는 위에 처럼 큰 결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강아지라는 동물은 나같이 산책도 잘 안시켜주는 사람까지도 조건없이 따르며, 우리의 모든 부분을 수용해 주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동물이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 부터 강아지와 함께 자란 사람의 정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까 상상한다. 그리고 그런 동물들에게 감사하며 우리 강아지들을 위해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이제부터라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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