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Articles   이것은미술이아니다

 

오드리의 미술이야기①



-이데올로적 관습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어린 시절, 가장 먼저 브라운관을 통해 보게 된 세상은 어떠했을까? 나에게는 ‘디즈니’의 인어공주가 보여줬던 세상이 떠오른다. 동생을 분홍색 포대기에 업고 상영시간에 늦지 않게 내 손을 꼭 잡고 티켓팅을 하던 엄마를 기억한다. 늦어서 급한 발걸음으로 걸어갔지만 한 손으론 날 잡고 다른 손으로 업힌 내 동생을 붙잡고 있던 엄마가 빠르면 얼마나 빠를까. 당연히 늦어서 헉헉대며 제일 꼴찌로 들어갈 수밖에. 묵직한 영화관 문도 처음 봐서 어떻게 열어야 되는 건지 순간 두려웠는데 엄마는 능숙하게 문을 열었다. 2시간동안 환상적인 화면에 내 눈은 젤리처럼 말랑거리고 가슴은 무척 두근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으로 무언가 보고 두근거린 게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라서 어쩐지 슬픈 거 같기도 하다. 남들과 다르지 않았던 유년의 경험이 서운했던 걸까? 아니면 나에게 인어공주를 보여주기 위해 헉헉대며 갔던 엄마가 생각나서 일까.

 엄마는 왜 그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고 싶어 했을까. 그 뒤로도 나는 인어공주를 엄청 나게 좋아했고, 나의 미의 기준엔 흰 피부의 금발머리 신데렐라 보단,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빨간 머리 인어공주가 자리 잡았다(사실 그게 그거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나같이 어릴 적 시각적 두뇌활동을 디즈니로 시작하는 아이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지. 유치원에서조차 디즈니에 나오는 공주님같이 생겨야 ‘예쁜 애’라고 취급해 줄 텐데, 공주님 축에 끼지 못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열등감으로 어린 시절을 시작할지도 모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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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신디 셔먼의 1981년 작 <무제 영화 스틸>을 보자. 신디 셔먼은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관습’에 주목한다. 우리가 자주 보는 영화와 대중매체 속에서 관습적으로 보여 지는 여성의 이미지를 포착하여, 자신이 직접 등장해 재현하는 작업을 했다.

 여기서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잠깐 설명해보자. 위에서 말한 나의 경우처럼, ‘슈렉’ 이전의 디즈니 만화를 세상의 많은 내 또래 아이들이 기어 다닐 때부터 보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 속에 등장하는 ‘공주’를 보며 공주님이란 서구의 기준에 맞춰진 ‘아름다운 외모’를 한 여자라고 알게 된다. 한마디로, 권력을 가진 문학 텍스트 혹은 시각적 재현물들이(ex.디즈니) 세상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실제를 왜곡하거나 부풀리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재생산하여 차츰 보편화시킨다. 이러한 인식작용을 이데올로기적 관습이라 하는데, 신디 셔먼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이데올로기적 관습을 폭로하고자 <무제영화 스틸>과 같은 작품을 제작한다.

 이미지는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우리의 삶과 의식이 이미지들에 의해 영향 받고 규정된다. 그리고 신디 셔먼의 작품들은 이러한 우리들의 시각적 경험을 파고들면서 무엇을 볼 것인가를 질문한다.


또 하나의 예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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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가정당 CF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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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

ugh with His Wife and Elder>1751-2 


  낭만파 초상화가로 알려진 게인즈버러의 <Thomas Gainsborough with His Wife and Elder>는 남녀로 이뤄진 부부와 어린 딸, 애완견으로 ‘이상적인’ 가족구도를 보여준다. 영국의 왕실화가였던 게인즈 버러의 작품엔 대부분 단란한 왕가의 일상이 풍경과 함께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일종의 ‘가족’에 대한 판에 박힌 인식은 ‘왕실’이 아니어도 현재 우리의 삶 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가족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총선에 참여한 평화통일가정당의 홍보영상은 ‘보편적인’ 4인으로 이뤄진 가족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이러한 구조를 가지지 못한 가족들을 배제하고, 어떠한 ‘허상’을 끊임없이 ‘실제’이며 ‘규범’이라 강요함으로써 우리의 ‘가족구조’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과 상상력을 제한하게 된다.



 

 다시 ‘공주님’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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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그르<The Turkish Bath> 1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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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슬레이 <The Turkish Bath>1973
 


여기 두 점의 작품이 있다. 터키탕 안의 여성들을 담은 앵그르의 1862년 작 <The Turkish Bath>와 동일한 제목을 달고 있지만, 하나도 비슷하지 않은 실비아 슬레이의 1973년작 이다. 앵그르의 작품에서 이 터키탕의 여자들은 죄다 젊고 아름다우며 요염하다. 대중목욕탕, 혹은 찜질방에 갔을 때 ‘아름다운’ 여자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더군다나 여탕 마루에서 벌거벗고 주무시는 아주머니들이 요염한 포즈를 취했던 적이 있나? 동그란 프레임안의 여자들은 마치 누군가에게 엿보이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어느 한 명도 이 훔쳐보는 시선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관음증적 시선 아래서 여성들은, 요염하게 ‘보여 지고’ 있을 뿐인 이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여성의 몸은 젊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과,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만이 ‘자연스럽다’고 느끼게 될 뿐 아니라, 이들은 늘 ‘보여짐’의 ‘대상’이어야 할 것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실비아 슬레이의 <The Turkish Bath>는 이러한 관습에 반기를 든다. 아름다운 여인들 대신 털이 북슬북슬한 남정네들이 등장한다. 그다지 성스럽거나 아름다운 몸도 아니고, 멋진 외모도 아닌 ‘남자’들이, 전혀 요염하지 않은 자세로 앉아 그림을 바라보는 관객을 향해 똑바로 시선을 두고 있다. 누드는 아름다운 여성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우리는, 군더더기 없는 남성의 누드와 마주쳤을 때 어쩐지 당혹감을 느낀다.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것들이 깨지는 순간 우리는 어떤 ‘당혹감’을 느끼게 되는데, 실비아 슬레이는 이러한 당혹감을 관객에게 선사함으로써 마치 관습적 이데올로기가 산산조각 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발하는 듯하다.

 우리는 유년기에 디즈니를 통해 공주의 이미지를 접한다. 그 속에서 항상 주인공인 공주는, 당연히 서구적인 외모를 지닌 젊은 여자(거기다 ‘착한’)였다. 그리고 그 공주의 이미지는 자신 혹은 타인에게 열등감 주게 된다. 이처럼 이미지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과 함정은 곳곳에 포진해 있다. 미술은, 혹은 미술의 언어는 그 함정들을 찾아내는 통찰력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그리고 이미지란 단단하게 구현되는 것이 아닌, 해체하고 돌파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돌파했을 때 맞닥뜨린 당혹감이야말로, 어쩌면 ‘명쾌한 해답’으로 진화할 수 있는 미술언어의 자기 쇄신 능력은 아닐까?




찾아보면 좋을 자료들: <여성, 미술 이데올로기>,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다음 회에서 예술가의 신화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겠습니다.


Audrey(열린 작업장 ToT) / Hidoo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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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공감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미술이 공부 못하는 애들이 하는 것으로 간주되는데 그게 억울 했다.

유메- 그런 인식이 드는 거 아닐까.

새삼- 예능계 직업을 떠올렸을 때 학원 선생님 같은 것으로 밖에 없나봐.

센- 체육은 공부 못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유메- 체육선생님들이 다 무식해서 그래.

센- 내가 아는 오빠도 공부를 못해서 체육을 했다. 처음에 세이랜 작업실을 이젤이 막 어지러져 있고 물감이 막 있는 작업실을 상상했다.

새삼- 침대있고.

센- 미술의 경계가 모호해졌다고 생각한다. 헷갈린다.

오드리- 경계가 뭐인거 같아요?

센- 그림을 그리는 게 미술이고, 다른 영상작업을 하고 그런 것은 예술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술 한다고 다 그림그리는 게 아니고 영상 한다고 다 영상하는 게 아니니까. 뭐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오드리- 언어가 있고 맥락이 있는 것이 예술이라 생각한다.

그림자- 작품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게 예술이 아닐까. 근데 그 설명을 듣고 동조 할 수 없을 때 그때 또 헷갈리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새삼-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그것을 말로 해낼 수 있는 게 예술 아닌가. ‘미’가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오드리- 적어도 우리는 자신만의 ‘미술’의 정의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삼- 사람들이 어쩌다 대안학교, 미술팀에 있어요? 라고 묻는데 더 물어보게 될까봐 겁났다.

센- 사람들의 인식이 삐뚤어진 것 같기도 하고, 미술이라고 하면 굉장히 우월한 능력이라 생각한다.

새삼- 반면엔 공부 못 하는 애들이 가는 것이 아닐까.

센- 오히려 막 천재로 추앙하는 분위기도 되기도 한다.

오드리-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아직도 천재의 아우라와 환상이 남아있는 것 같다.


세이렌 등장.

인문학에서 푼크툼과 스투디움에 대해서 배웠다며. 어디 한번 설명해 보라.
오드리- 한마디로 스투디움은 '호감'이고 푼크툼은 '사랑'이다.

세이렌- <마네의 올랭피아>를 보면 알겠지만, 사실 공모전이라는 게 힘을 잃었다. 화가가 거쳐야 되는 관문 중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상을 하는 게 있었다. 이제 불현들 나타난 천재화가보다는 꾸준한 작품세계를 만들어가고 잘 기획해서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뜬다.

바르끄가 ‘신화’라는 것이 없는데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 이야기 한다. 예술가들은 전부 고독하고 드럽고 가난해서 못 먹으면서 힘들게 그림 그리는 것. 선입견과 편견들이 전부 신화라는 것이다. 거창하고 위대하고 천재들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라는 것이 점점 더 깨지고 있다.

작가들이 천재를 받드는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천재를 깨는 작업들을 한다. 천재, 예술가, 훈남, 현모양처 이것들이 모두 이미지이고 판타지이다.

영어에선 카메라로 찍는 것을 '슛'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 것은 강한 의미를 둔다. 푼크툼은 ‘포인트’라는 뜻이다. 독일에선 아직도 그 의미로 쓰이고 있다. 호감과 시야 안에서 구지 나를 향해서 달려오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과잉되고 특별한 느낌이다. 예술 작품이라는 것은 정의할 수 없는 상황과 말할 수 없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한다. 말로 담을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술이란 언어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작업이 가지고 있는 언어는 또박또박하는 것이랑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우물우물.

또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미 두 개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영어를 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언어이다. 그래서 예술이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일어나고 있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작업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오드리- 그럼 그때까지 훈련하고 작업하고?

세이렌- 그 과정이 싹 빠진 게 천재지.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있냔 말이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눈을 가지고 무엇을 통해서 이 사람을 보려고 하는지 조금 다른 재능을 가지고 조금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는 거야. 그런데 괜히 천재라는 말로 신화가 되는 거지. 그래서 근대이후에선 천재가 없다고 이야기 하는 거지. 이제 사람이 사람처럼 서있는 것을 잘 그렸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단 말이야. 미술이 이제는 곧이곧대로 그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표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 재능을 살려서 자기 것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거지. 세상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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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필요한 거 아닐까. 정말 TOT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술/디자인’이란 단어에 국한 되지 않고 삶과 예술에 대해 활발히 이야기 나누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 그룹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합시다.


다음주 발제는 유메입니다:::| 미학: 예술의 이론 , 미술 창작이라는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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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2008/03/19 12:11 in 분류없음 | Tags: 이것은미술이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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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3- 예술이라는 용어에 대해

지금의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예술’이라는 용어는 18세기부터 그 근대적 의미인 개인의 독창적인 산물이란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일상생활과 동떨어져 있으며 미적 아름다움을 지닌 물체라 여겨졌습니다. 정체적 선전물이나 종교적 신앙이나 마술이나 공예가 아닌 지금과 같은 예술이라 불린것은 근대이후랍니다. 고대의 그리스 예술은 프린트물에 적힌 데로 지식이나 기능의 일종이었습니다. 중세에 예술은 누구나 터득할 수 있는 기술로 여겨졌으며 13~15세기까지는 예술, 특히 미술의 회화는 일상기술로 여겨졌으나, 한편에선 이탈리아 르네상스 작가들이 반대했습니다. 그래서17세기 프랑스에선 순수예술에 대한 개념과 체제가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Art의 용어


국어사전의 예술-

예술 [藝術]

[명사]

1 기예와 학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공간 예술, 시간 예술, 종합 예술 따위로 나눌 수 있다.

3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네이버 백과사전의 예술-

미적(美的)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

영어의 공식적 정의의 예술-

아름다움을 시각적인 형태로서 기술적으로 생산하는 것.






₡예술이 순수예술이 되기까지

13세기의 미술- 이상기술

14,15세기- ‘미술’이란 용어가 현재의 용례와 유사한 요소를 가지게 되었으나, 여전히 시각예술(회화)은 일상기술로 여겨짐.

이탈리아 르네상스 작가 & 미술가들은 회화도 자유기예(웅변술, 변증법, 산수)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

그 와중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미술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과학적 시도 접목.

17세기 말- 순수미술에 대한 개념, 체계의 발전이 프랑스에서 확립됨.

*일상기술의 결정 요인

<과학>수학과 실제지식 ↔ 재능, 취미<예술>

18세기 말- 아베바퇴의 논문으로 드디어 순수예술과 일상기술 분리.

신구논쟁이후 -> 예술은 과학 같은 이성적 활동이 아니라 상상력의 소산이라는 관념 싹틈.



*고대 그리스의 미술 - 배워야 할 규칙과 기술이 있는 ‘지식’ ‘기능’

*근대의 미술 - ‘천재적 개인의 독창적인 산물’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은 - ‘중세’의 누구나 터득할 수 있는 기술




예술지상주의 & 예술숭배-

미술이 사회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


현대의 미술-

미술의 영역이 거의 무한대로 확장된 동시대 미술.

미술과 비미술의 경계를 묻는 일 자체가 예술행위가 되기도 하며 매체나 재료 제작방식 외관상으로 미술이냐 비미술이냐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음.


코수스-  “미술활동은 미술 그 자체의 성격에 대한 탐구로 귀결되어 한다.”

미술이 물질적 형태로 표현되지 않아도 되며, 언어가 미술의 기본재료가 될 수 있음.


 


니들이 예체능을 아냐???


수능이 끝나고 니들 좋다고 술먹고 다닐때 우리들은 4b 연필가루 먹으면서 콜록거렸고

니들 좋다고 술한잔 먹을떄마다 우린 높은음 1음더. 낮은음 1음에 땀을 쏟았다

니들 손톱손질 할때 우리턱걸이해서 손바닥에 배긴 굳은살 뜯어냈다

니들 사우나 가서 5분앉아있다가 켁켁 거리고 나올때 우리 체중조절하느라고 땀복입고 1시간씩 참고 앉아있었다

니들 침대위에 누워있을때 우리뱃힘기르기위해 윗몸일으키키 했고

니들 마음 편히 잠잘때 우리 노래 분석,음표공부 했고

...중략

그럼 너희 들은 그렇게 무시했던 우리들을 부를때 이렇게 말하지...."선생님...." 이라고..

----


너흰모르지. 그냥시험망쳤다 하면 너흰꼭그러지 넌미술하잖아. 미술하면 다 골빈것들인줄알지

학교선생님들은 꼭 내신준비 하라하지 내신 실질반영도 도 모르면서 미술하면 다 골빈것들인줄알지

우리도 너희랑똑같이 최소 2등급아니면 서울에있는대학 디딜수도 없다는걸 모르지

그러면서 말하지 넌미술하잖아 공부필요없잖아

...중략

나도미술이나할까~ 이러고.. 야자안해서 좋겠다~이러지.. 웃기지않냐?

공부할시간 더 없고 학원학교 다돌아다니면서 버스에서공부하고 전철에서공부하고

그렇게해서 미대가야하만하는데 너흰 그런것도모르면서 아는거하나도 없으면서

미대하면 홍대홍대거리고 그림한장에 그 평면에 입체 박아두기 원근감은 필수 포인트주기 통일감은있는지 긴장감은있는지  주제 파악가능한지


교수님들이 내그림을평가하는시간 단 3~7분 이란것도모르지

그 그림한장에 우린 몇년을 투자했는데..

----



석고외곽 다 잡앗는데 석고 크거나 작다고 햇을때 얼굴과 가슴 비례가 안맞다고 했을때 그 뻘쭘함을 느껴본적있는가?

연필 깎으러 쓰레기통까지 가는 시간 아까워 앉은 자리에서 연필 깎아 본적있는가?

앞사람 옆사람 뒷사람 다리랑 교복에 물감튀겨서 완전 미안했던적 있는가?

같은 과자라도 같은 과일이라도 정물은 더 맛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5시간 시험본 그림 교수가 3초보고 지나가면서 휙휙 점수매길때  그런 긴장감을 경험한적 있는가?

...중략

비너스의 옆머리가 몇가닥인지 세어 본적이 있는가?

아무것도 아닌 물건이라도 머릿속으로 명암을 넣어 본적이 있는가?

미술이 쉬운건지 아는가? 수채화가 쉬운건지 아는가?

수능 2등급 실기 A+ 이정도는 되야 일류대를 간다는 그 무한경쟁의 세계를...

예체능은 쉽게쉽게 대학에 가는줄 아는가



-----



연필가루를 코며 입이며 들이마시는 그 기간

인문계 애들아 니네들은 아느냐 예체능 이라고 깔보지 마라

니네보다 훨씬 더 많은 피땀을 흘려야 대는것이 바로 예체능이다.

니네보다 장차 더 유명해질 사람들도 바로 예체능이다

니네 공부 할 동안 우린 그림 그린다. 집에와서 니네 자는 시간에 우린 공부한다.

배 로 힘 든 게 예 체 능 이 다. 예체능 이라고 무시햇다간 니네 큰 코 다친다.

니네 저 연필 숫자만큼 연필로 공부 했냐? 아마 하지 못햇을 거라 생각된다.

우린 최고가 되기 위해 이 길을 선택한 것이다. 사람의 꿈을 무시 하지마라.


 - 웹서핑중 발췌




 

 함께 이야기 하기
- 예술이라는 용어 파트를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한국의 입시예술 형태였다. 예술의 엘리트주의를 강조하고 아직까지도 중세시대 때의 ‘터득할 수 있었던 미술’ 의 개념을 가진 입시예술은 간혹 이런 생각들을 갖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 웹서핑중 발췌문 “니들이 예체능을 알아?” )

보수적이고 권위적이며, 특권을 얻은 듯 태도를 보이는 이 고등학생들이 훗날 정말 예술학도가 된다면 얼마든지 깨우치거나 생각의 변화가 올거라 믿지만, 이런 뿌리를 갖게 해주는 입시예술은 어떤 형태를 갖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어떤 형태가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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