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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 반대한다- 서론 1

2007/12/20 15:26 in 분류없음 | Tags: 동물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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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동물들은 우리 인간에게 도전거리를 제공한다. 그들의 우리와 유사한 동시에 다르다. 그들은 우리와 닮았다. 사회적 유대를 형성하고, 서로 의사소통을 하며, 그들 중 일부는 우리 중 어떤 이들처럼 일부일처제를 형성한다. 하지만 동시에 완전히 우리와 동 떨어진 존재들이다. 환상 속에서는 둘리틀 박사(휴 로프팅의 아동 문학 작품 ‘둘리틀 박사’시리즈에 등장하는 수의사로, 동물과 대화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옮긴이)가 통역을 해 주지만, 현실에서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개 짖는 소리를 이해하기는 커녕 개의 말을 배울 수 조차 없다. 비슷함 비슷하지 않음, 같음과 다름의 이러한 역설이 동물을 향한 인간의 이끌림 속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 외에 또 다른 무언가가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의사소통에 대한 강렬한 욕구일 것이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1892~1940년, 독일 철학자, 문예 이론으로 유명하다- 옮긴이)은 이렇게 밝혔다. 우리가 동물에게 갖느 혐오감 중에서 가장 주된 감정은 접촉을 통해 동물에게 인식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들과 너무나 유사한 그 무엇이 우리 인간 속에 내재되어 있어 그것이 그들에게 인식될지도 모른다는 어슴푸레한 자각은 인간의 깊숙한 내면을 휘젓는 공포이다. 모든 혐오감은 본래 접촉에 대한 혐오감이다. 심지어 그 감정이 정복되는 것도, 오직 그 감정의 표출을 덮어 버리는 극적인 몸짓을 통해서이다. 매스꺼움은 억지로 억눌려지고 안으로 삼켜지는 한편, 섬세한 표피 접촉 행위는 금기로 남는다. 인간의 혐오감에 대한 고도의 정교화와 그 극복을 동시에 요구하는 역설적인 도덕적 요구는 오직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충족된다. 인간은 동물과의 야만적인 관계를 부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관계에 대한 기원을 혐오한다. 인간은 그들을 정복해야만 한다.


 의사소통의 욕구에 발 맞춰 작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거스르기도 하면서, 벤야민이 주장하듯 두려움은 지속되는데, 이 두려움은 혐오감으로 나타난다. 이 혐오감은 동물들을 향한 것이지만, 이 혐오감을 인간, 우리 자신에 관한 감정이라고 보는 것이 정당할지 모른다. 우리와 동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친족관계(물론 일정 부분 우리가 원해서 만들어 낸 관계)에 대해 소름 끼쳐 하며, 그것을 쓸 어 버리고 말살해 버리려 한다. 정복- 통제, 지배-은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나 동시에 존재하는 이 두가지 충동- 의사소통에 대한 욕구와 두려움-을 (나는 동물과의 관계에서는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함께 고려한다면, 대두되는 것은 동물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의 문제이다.

 우리는 동물들과 함께 살고, 그들을 인식하며, 심지어 그들에게 이름까지 지어 준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마치 그들이 생명을 갖지 않은 물건인 듯 그들을 이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일상생화에서 타나는 이러한 비논리적인 관계를 회피하려 하며, 심지어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 있음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동물들을 규정하는 진리, 지식, 이성과 질서에 접근할 수 있거나 그렇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직도 그 진리, 지식, 이서오가 질서의 핵심에는 이러한 위험과 우리가 가진 능력의 한계가 여전히 남아있다. 동물들은 우리의 삶 속에 항상 존재하지만, 종종 우리는 마치 그들이 동물이 아닌 듯이 그들을 취급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우리의 전체 인식 구조에 있어서 일부 제한적인 경우이다.

그들은 우리와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 사이에 놓여 있으며, 또한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 준다.

 이러한 모순점이 이 책을 쓰게 한 동기이다. 나는 이 책에서 동물들에 대해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함께 생각하고, 우리가 동물들을 이용하는 여러 방식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동물들은 우리와 비슷하기도 하고 비슷하지 않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우리의 친구이자 적이며, 독립된 개체로서 인정받기도 하고 실험용으로 해부되기도 하며, 사랑받는 대상이 되기도 하고 음식 재료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대립관계가 나의 관심사이다. 이 한 권의 책으로 동물들과 우리의 관계에 관한 모든 면을 다룰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예를 들어, 몇 권의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들을 면밀하게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다른 많은 문학 작품들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의미를 캐내기 바란다. 이와 비슷하게 육식과 같은 중요 주제를 논의할 때에도 두가지 사례- 토끼 고기 파이와 식육용 송아지 수출-가 이러한 주제에 관한 몇 가지 다른 사고방식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다.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러한 연구 자료들을 찾을 수 있는 곳을 알려 주기는 하겠지만, 채식주의의 본질과 역사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자리는 아니다.

 이 책의 의도가 아니 점을 말했으므로, 이 책의 특징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일도 가치 있을 것이다. 나는 전향을 권유하는 그 어떠한 직접적인 시도도 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동물 권리에 관한 복음 전도식의 의견을 제시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독자에게 서구 사회가 동물들을 이용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권유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논쟁적이기도 하다. 즉 이 책은 동물들과 우리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볼 핗ㄹ요성을 제기하고 그와 관련된 토론거리를 제공한다. 이러한 논쟁은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지위에 대한 분석에서가 아니라, 현재 우리와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분석에서 도출된다. 즉 서구 문화에서 동물들이 처한 다양한 상황들을 비교 분석해 본다면, 내재적 모순들이 많은 의문들을 불러일으키리라는 점을 이 책은 주장하는 것이다.

나란히 놓고 보면, 예를 들면 한편으로는 주인과 애완동물이 서로 친밀한 유대를 나누는 모습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녁 식탁에서 동물의 살코기를 먹는 모습이 함께 나타난다. 이와 비슷하게 <샬롯의 거미줄>과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등의 책에서는 동물들이 의인화되어 표현되는 반면, 동물 실험은 인간과 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관한 절대적인 차이를 역설한다. 바로 이 모순들- 그리고 다른 모순들도- 이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도사리고 있는데, 우리는 종종 이 점을 간과한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소와 우리와 함께 사는 고양이를 좀처럼 결부시켜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순들을 표면에 드러냄으로써 이 책이 우리와 동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논의들을 지속시켜 줄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 시대의 문화만이 이 책에서의 초점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동물들과 살아가는 수많은 방식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그러한 방식들이 각기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냉철하게 깨닫게 된다. 따한 다른 종들을 대하는, 겉보기로는 명백히 우호적인 우리의 많은 몸짓들도 동물의 ‘가치’라는 개념보다는 인간의 우월성이라는 확고한 신념에 더 많이 기초를 두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예를 들면, 19세기 런던에서 개수레(개가 끄는 수레)를 불법화 한 것은 동물의 권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선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동물 학대의 실태를 보고 느끼는 인간의 불쾌감에 대한 반응이었고, 또한 동물들의 오물과 질병이 오염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인간의 혐오감에 대한 반응이었다. 또한 동물의 복지를 증대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운동들은 동시에 과거와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인간의 동물 이용을 은폐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개 수레가 금지되었을 때, 수레를 끌던 개들은 은퇴하여 난롯가 곁에서 행복하게 여생을 보내지 못했다. 대부분은 죽음을 당했다. 애완견으로 키우기에는 그 개들은 아주 비쌌다. 겉으로 보기에 친절함의 표시인 듯한 몸짓이 한편으로는 인간의 자기 보호의 몸짓이기도 하다. 벤야민이 논했듯, 동물에게 가지는 우리의 가장 큰 두려움은 접촉- 나는 손을 통한 접촉뿐만 아니라 눈, 귀, 코와 입 등을 통한 접촉도 이에 포함하고자 한다.- 을 통해서 유발되는데, 이러한 두려움과 혐오감을 극복할 유일한 방법은 정복이다. 인간이 동물을 제압하는 가장 폭력적인 방법으로서 ‘먹기’가 있다. 그러나 동물들을 소비하는 다른 방식들도 있다. 실험용으로 사용하기, 우링 가두어 두고 감상하기, 사냥 하기, 옷으로 만들어 입기 등이다.(계속 나열할 수 있다.) 현시대의 논의들과 역사에 비추어 보면, 현재의 우리와 동물의 관계는 점 점 더 간접적으로 되어 가고, 우리문화에서 완전히 자연스러워 진 많은 가정들이 낯설게 되어 가고 있다.

 자연스러워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자연계의 재정도>이라는 책에서 인류학자 애너벨 사블로프(캐나다의 인류학자-옮긴이)는 조지 래코프(영국 브라운 대학교의 인지 심리학 교수- 옮긴이)와 마크 존슨(영국 브라운 대학교의 인지심리학 교수- 옮긴이)의 연구를 따라, 우리는 은유에 의해 산다고 주장했다. 즉 한 사물의 양상을 다른 사물에 적용시키는 비유법인 은유는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주요한 조직화 구조 가운데 하나이다. 은유의 한 예로 ‘피터는 돼지이다.’라는 문장을 들 수 있다. 이 은유에서 우리는 피터가 진짜 돼지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돼지와 연관시키는 특징의 일부인 탐욕, 더러움 등을 피터가 갖고 있다는 의미임을 알고 있다. 문학 평론가 노먼 프리드먼(미국 퀸스 칼리지의 영문학 명예 교수- 옮긴이)에 따르면, 피터와 돼지의 관계는 ‘차이 속의 유사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것이 은유가 작용하는 방식이다. 은유는 피터와 돼지라는 두 관념을 묶어서 둘의 단순한 혼합 이상의 무엇인가를 창조한다. 잡종을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 말하자면 우리의 현존하는 종들을 새롭게 보는 법을 얻게 된다.

 사블로프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경험되고 이름이 붙은 삶의 영역과 이해되긴 했지만 이름이 붙지 않은 삶의 영역을 연관시키려는, 인간 정신의 본래적 능력이라 할 수 있는 은유는 인간의 인식과 행동 방식 및 정서적인 생활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메커니즘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경험을 통하여 미지의 것에 이름을 붙인다. 프리드먼이 한 말대로, 우리와의 차이 속에 깃든 유사성을 바탕으로 우리는 이 세계를 이해한다. ‘저기 외부’에 있는 것에서 ‘여기 내부’의 은유로 옮겨 오는 과정을 통해 불가해한 것이 이해된다. 사블로프는 우리와 뚜렷이 다른 존재인 동물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세가지 주요 은유를 제시한다. 가정 생활의 영역에서 그 은유는 동물들이 가족의 구성으로 여겨지는 한편 그녀가 공장의 영역이라고 이름 붙인 영역에서는 우리가 이용하기 위한 일종의 물건, 도구 및 대상일 뿐이다. 동물 권리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영역에서는 동물들이 시민으로 여겨진다. 세 경우 모두에서 동물 그 자체는 사라지고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표현해 보려는 시도인 은유적 구조만이 드러난다.

 사블로프는 현재 동물에 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 유형에서 누락되어 있는 것이 인간 중심에 반대되는 생명 중심적 관계를 용인하는 또 하나의 은유라고 논하고 있다. 이 은유는 다른 생명 형태의 근본적 차이를 용인하는, 즉 인간의 윤리적 영역 이외에서의 동물들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며, 오직 인간을 중심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세상을 이에 따라 표현하는 관계와는 반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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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 반대한다- 서문

2007/12/20 14:46 in 분류없음 | Tags: 동물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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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 반대 한다⌟


서문- 동물과 인간, 함께 살아가기


동물들이 우리 삶에서 급부상하고 있다. 수많은 인명을 단숨에 앗아 간 조류 독감의 대유행과 광우병 사태,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고 있는 애완동물 산업, 생명 공학을 이용한 동물 장기 복제와 유전자 조작 동물의 출현 등 현시대의 굵직굵직한 사건들만 보아도, 동물들이 우리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직감할 수 있다. 매일 자리하는 식탁에서, 공원이나 길에서 종종 마주치는 개나 고양이에서,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동물 관련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동물을 만나고, 동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에 의해 ‘동물’이라는 단일한 이름으로 뭉뚱그려진 그들은, 우리 인간과 맺고 있는 그 관계 양상에 따라 삶 또한 극명하게 달라진다. 한편에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존중받는 살아 있는 동물이 있는 반면, 또 다른 한편에는 생명체가 아닌 적절히 이용되어야 할 ‘물건’으로서의 동물이 있다. 같은 동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오랜 세월 인간이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맺어 온 관계. 그 관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이 책은 문학과 철학,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인간에 의해 ‘동물’이 어떻게 규정되어 왔는지. 그에 따라 인간과 동물이 어떤 관계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깊이 있게 성찰하고 있다.

 영국 미들섹스 대학교의 인류 문화 연구소에서 선임 강사로 있는 저자 에리카 퍼지는 <동물을 인식하기(Perceiving Animal)> <인간의 경계에서(At the Borders of the Human)>등의 전작에서 인간의 역사와 문화 속에 표상된 동물을 통해 동물과 자연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면밀히 탐구했다.

 이 책은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동물과 인간의 관계, 특히 양자가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을 파헤친다. 실험실에서, 철학자들이 펼치는 논리의 영역에서,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서 동물이 우리와 어떻게 관계 맺으며, 그 관계 속에 어떠한 모순과 역설이 깃들어 있는지를 저자는 살펴본다. 또 한 인간-동물 관계에 대한 모색을 우리 이간의 삶에 반영시켜 우리의 모습을 직시하고자 한다. 서구 문화의 뿌리를 이루는 <창세기>에 나오는 인간과 동물 간의 지배 관계를 시작으로, 근래의 동물에 대한 대규모 산업적·과학적 이용,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숱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제도적 학문적 노력에 이르기까지, 서구 사회에서는 동물과 관련하여 그들 나름의 진지한 모색을 계속해 왔다. 그리고 그 결과, 최근에 와서는 소기의 결실을 거두고 있다. 이 책에서는 서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움직임을 전체적으로 소개하고, 다양한 관점에서의 성찰을 담고 있다.


 ‘서론’에서 저자는 인간과 동무릐 관게에 대한 근본 관점이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이슬람교·불교의 동물관을 살펴보고 있다. 특히, 서구의 기독교가 인간-동물의 관계를 철저하게 종속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이토록 오랫동안 고착되었던 가치관이 다원의 진화론 이후 급변하게 되었음을 알려 준다.

 ‘1장 보임과 보이지 않음: 인식에 관한 문제’에서는 인간의 동물 이용의 문제를 파헤친다. 우주 실험용 원숭이의 미소에 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하여, 인간이 동물을 동반자 인 듯 표현하고 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철저히 동물을 도구나 대상으로 간주하며, 동물을 인간 중심주의적인 시각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밝힌다. 한국의 개 식용 문제와 조금은 관련이 있는 문제인 토끼식용 문제를 언급하며, 애완용과 식용으로 소비되는 동물의 경계의 문제 및 그와 관련된 인간의 모순적인 가치관을 파헤친다. 애완동물이 인간의 삶과 맺고 있는 복잡다단한 여러 관계들에 대한 고찰은, 점점 더 애완동물 관련 산업이 커져 가는 한국의 현실을 놓고 볼 때에도,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또한 저자는 이러한 동물-인간 관계의 모순을 철학의 눈을 통해서도 바라본다. 피터 싱어, 톰 리건 등 동물권 관련 윤리학자들의 견해가 제기한 도전과 이에 대한 반발을 아울러 살펴본다. 모피에 관한 문제를 다룰때는 시뮬라시옹 이론으로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 보드리야르의 이론까지 적용하여 심도 있는 분석을 내놓는다.

 ‘2장 실제와 상징 : 차이에 관한 문제’ 에서는 아동 문학, 영화, 동물 실험, 이종 간 장기 이식 등의 문제를 파헤친다. 한편에서는 문학, 영화 등의 영역에서 의인화를 통해 동물을 인간과 마찬가지인 존재로 보려는 노력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동물 실험 등의 경우처럼 인간과 동물을 완전히 별개로 취급하는, 이종 간 장기 이식 등의 문제를 파헤친다. 한편에서는 문학, 영화 등의 영역에서 의인화를 통해 동물을 인간과 마찬가지인 존재로 보려는 노력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동물 실험 등의 경우처럼 인간과 동물을 완전히 별개로 취급하는, 인간의 모순적인 관점들을 표면으로 부상시킨다. 그리고 동물을 실험용으로 사용하는 데 든든한 받침대가 되어 준 근대 철학을 꼼꼼히 살펴본다. 유전자 조작 동물의 출현, 동물 장기 복제 연구 등이 급속도로 진척되어 가는 오늘의 현실에서, 이러한 문제를 짚어 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3장 지능과 본성 : 능력에 관한 문제’ 에서는 동물의 능력에 대한 ‘인간의’ 시각을 보여 주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동물이 인간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 수학적 계산을 할 수 있는지, 인간처럼 내면의 세계, 정신적이 세계가 있는지를 알아보려 했던 여러 실험들을 통해 이러한 관점이 동물을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인간 중심적인 시각의 발로임을 표면화시켜 준다. EH한 비둘기 실험의 예를 통해서는 동물의 능력을 본능으로 취급하려 하는 인간의 관점을 꼬집는다. 예술의 영역에서 인간과 동물의 새로운 만남을 그려 낸 점도 이 장에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마지막 ‘결론’에서는 동물(The animal)이라는 단수형 언어가 담고 있는 문제점들을 데리다의 철학적 관점을 인용하여 깊이 있게 파헤치며, 동물을 동물로 생각하기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해서 논의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인간과 동물간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들이 곳곳에서 일고 있다. 동물 해방의 성서라 불리는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의 번역 출간을 필두로, 산업화된 축산 환경하에서 대규모로 생산되는 농장 동물의 현실 등 현대 사회에서 동물들이 처한 비참한 실태를 고발하는 책들이 국내에서도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동물의 권리, 복지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문제 의식을 느끼던 몇몇 사람들에 의해 개인적 활동 또는 작은 모임차원에서 이루어지던 동물권 관련 시민활동도 점차 조직화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러한 단체에서 잠시나마 몸담은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활동할 당시 문제에 대한 인식과 활동 지침은 있으나 그러한 문제를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전망이 부재하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까웠다.

 그런 상황에서 이 책에 대한 번역을 제안받고 무척 반가웠다. 기존의 책들이 주로 동물의 권익을 일바적으로 옹호하고, 그러한 옹호의 과정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자기 모순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반면에, 저자는 동물을 지배하고자 하는 측과 돌보고자 하는 양측 진영에 함께 존재하는 문제들을 들추어 낸다. 이를 통해 동물에 대한 양 극단에 서 있는 어떤 쪽도 동물을 동물 자체로서 바라보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오로지 인간화 또는 인간 중심 주의라는 거울을 통해서만 그들을 비추어 보고 있는 현실을 폭로 한다. ‘동물’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동물’에 대해, 그리고 ‘동물’과 인간의 공존 방식에 대해 균형 있는 시각을 위해 이 책을 읽어 볼 것을 권한다.

2006년 6월 말

옮긴이 노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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