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음악을 좋아는 하지만 특별히 한 곡을 콕 찝어서 좋아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주로 어떤 음악에 확 꽂혀서 몇날 며칠 동안 그 노래 한곡만 질리도록 듣다가, 결국 질리면 금세 다른 노래에 꽂혀서 또 그 노래만 주구 장창 듣는 케이스다. 그래서 특별히 각별한 애정을 품은 음악도 없었지만, 반대로 내가 즐겨 들었던 노래들은 대부분 한 순간이나마 내 최고의 노래였던 것이다.(비록 아주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나는 유독 음악과 기억과의 연관이 많다. 음,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경험이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없어서 나만 그런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내 얘기를 하자면, 나는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는 꼭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씩 있다. 아니면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 특정 음악이 함께 떠오른다거나.
예를 들자면 춘천 가는 기차나 이등병의 편지 등 김광석 아저씨의 노래를 들을 때면 항상 굽이굽이 산 가장자리를 따라 나있는 도로를 달리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렸을 적 부모님을 따라 강원도로 여행을 많이 다닌 탓이다. 산을 따라 계속 올라가다 보면 창문 너머로는 정말로 구름(안개)에 싸인 산밖에는 보이지 않게 되는 때가 있는데, 그 때 듣던 노래는 대부분 김광석 아저씨나 그 비슷한 7080노래들이었다.
또, 내 방에 있는 작은 오디오를 볼 때면(지금은 쓰지 않지만) 처음 그 오디오로 음악을 녹음하던 때가 떠오르는데, 그 때 녹음하던 노래가 뭐였는지 순서까지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아마도 친구에게서 시디를 빌려 테이프로 녹음을 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잘 듣지도 않을 테이프를 왜 그렇게 공을 들여 녹음했는지 잘 모르겠다. 녹음한지 얼마 안돼서 그 노래들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내려 받았고, 당연히 자연스레 그 테이프는 기억에서 잊혀졌다. 지금도 그 테이프의 행방은 묘연하다. 당시에는 그냥, 일단 가지고 싶다는 맘만 앞서서 급하게 테이프를 사다가 시디와 테이프를 동시에 돌려 녹음을 해뒀던 것 같다.
그리고 내게 음악은 늘 기억만을 떠올리게 하는 건 아닌데, 종종 음악은 기억에 없는 어떤 이미지를 머릿속에 쾅 찍어놓고 가기도 한다.
이를테면, 화창하고 화사한 날씨에 쏟아지는 소나기는 성시경이 부르는 ‘희재’ 같다. 그 노래가 주는 분위기가 그 이미지와 꼭 들어맞아서 노래를 들을 때면 그 이미지가 떠오르고 그런 날 일 때면 그 노래가 생각난다. 하얗게 눈이 쏟아진 날 밤, 크게 달이 뜨면 임형주의 ‘하월가’가 떠오르고 사카모토 마야의 gravity를 들을 때면 추적추적 더러운 비가 내리는 안개 자욱한 뒷골목이 떠오른다.
이렇듯 나에게서의 음악은 언제나 기억 또는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거나 그것으로부터 불러일으켜지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종종 나는 그런 의문이 든다. 음악을 들으면서 느껴지는 것들이 정말로 음악을 들음으로서 느껴지는 것인지. 계속적으로 떠오르는 기억 혹은 이미지에 신경 쓰고 집중하게 되어서 나중에는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게 그 음악에 대한 감상인지, 음악에 따라오는 이미지/기억에 대한 감상인지 조차 헷갈리게 되는 것 같다. 음악이 그냥 음악만으로 존재한다는 건 뭘까. 음악이 다른 어떤 것과 함께 하지 않고 오롯이 그것으로만 느껴질 때, 들려올 때.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살아온 18년이라는 짧은 시간들을 거슬러 올라가 ‘내게 있어 음악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을 해보자면, 나는 솔직히 음악에 흥미가 없다.
음악과 한단비를 놓고 보면 별로 연관성은 없지만 꽤 밀접한 관계가 나타난다. 아빠는 음악을 좋아하셨다. 희미한 6살 이전의 기억들을 되짚어보면, 아빠는 정말로 음악을 사랑하셨던 것 같다. 예전에 나는 아빠가 운영하시던 ‘놀이터(노리터?)’라는 카페에서 피아노를 동동 치며 재롱을 부린 적이 있다. 그 때의 사진이 지금도 남아있는데, 나는 참 귀여웠다.
아빠는 통기타를 좋아하셨다. 추측해 보건데, 아빠와 동년배의 아저씨들에겐 어릴 적 통기타 연주하는 로망이 있었으리라. <검정고무신>이라는 애니메이션에도 일제 교복에 껌을 짝짝 씹으며 통기타를 연주하는 중고생이 자주 등장한다(참고로 아빠의 성함은 ‘한 성철’이신데 만화 속에도 ‘성철’이란 이름을 가진 아이가 등장해 신기했다). 한창 청소년기를 즐기던 아빠의 사진 속에 학생 아빠는 기타를 들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도 아빠는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주시곤 하셨다. 그 때 내 친구들은 그 이야길 들으면 많이 부러워했다(난 의기양양). 나는 잘 모르는 가수들의 노래들. 포크송으로 추정되는 그 음색이 아빠의 목소리와 선율로 고스란히 전해와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지금도 주말이면 가끔 아빠와 엄마는 노래를 틀어놓고 아침 준비를 하시곤 한다.
나는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다. 내가 고집을 부려서 간 곳인데 체르니 50인지 40인지를 중간까지 하다가 선생님이 이상한 분으로 바뀌었다는 이유로 그만두었다. 지금은 정말 진심으로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싶지만 너무 예전에 배웠기 때문에 손가락만 잘 벌어지지 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아빠의 영향이 커서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욕심도 많다. 음악을 연주하는 즐거움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마치 내가 그 음색들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음악을 참 배우고 싶었다.
그러나 배우고 싶다는 의지나 열정과는 정 반대로 나는 노래를 굳이 찾아서 들을 정도로 좋아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때도 아이돌에 관심이 없었다. MP3가 있었지만 좋아하는 노래를 듣기 위함이 아니라 버스소리와 아이들이 떠드는 시끄러운 소음을 막는 것에 주력했다. 또래의 아이들은 동방신기나 신화, god 등의 노래를 찾아 듣고 노래방에 가서 부를 정도로 좋아했지만 난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저 관심사에 맞춰 얘깃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연예가중계를 보는 정도, 신곡이 나오면 한 번 들어보는 정도였다. 간혹 슬프거나 외로움이 찾아오면 스케치북에 낙서를 하며 달랬다.
길찾기 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주제로 아침모임 수업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김진표의 ‘학교에서 배운 것’이라는 노래를 가져갔다. 그 때 내 미니홈피의 BGM이었다. 그 노래는 ‘유하’라는 시인이 쓴 것으로 ‘학교에서 배운 것은 공부가 아닌 폭력과 살아남는 법’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지금의 세대에겐 큰 공감이 가진 않는 이야기였다. 나도 사실 그렇게 공감하고 있던 건 아니지만 가수가 감정을 잘 실어서 불렀다는 게 좋았고 내가 고등학교 때 있던 일을 극단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가져갔다.
하자의 죽돌들은 음악취향이 제각각 달랐다. 아이돌을 사랑하는 아이, 인디를 좋아하는 아이, 힙합이나 브라질 음악을 많이 좋아하는 아이, 외국 음악에 취향이 있는 아이 등. 나는 딱히 구분지어 듣지 않았다. 그저 추천받은 것, 길에서 들어보고 좋으면 찾아듣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나의 음악취향으로 무시당한 적은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이 노래도 모르냐’며 ‘무식하다’라고 표현한 아이가 있었다. 내가 굳이 그 노래를 알아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아무리 그 노래를 좋아해도 나를 무시할 순 없는 거다. 그건 그 노래의 작곡가나 가수도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요즘 들어 문화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마치 ‘절대적인’ 것인 양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몇 있다(심지어 몇 어른들도). 많은 영화를 알아야 하고, 많은 책을 읽어야 하고, 많은 음악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래, 그게 중요하긴 하다만 너무 절대적이라고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아이돌을 무시하는 사람도 참 많더라. 내가 느끼기에 아이돌은 음악 산업의 어두운 부분이다. 요즘 음악시장이 저조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가수들이 힘들어한다는 소식도 많이 들었다. 몇 강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인문학 때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때 몇 사람들은 마치 아이돌을 혐오하는 것처럼 반응했다. 그러나 그 부분은 좀 더 깊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요즘 가수들 R&B라며 성적인 부분을 돌려 묘사하거나 노래와는 별개로 대놓고 노출하는 경향이 있다. 몇 팬들은 ‘음악성’을 보는 게 아니라 ‘외모’와 ‘패션’과 ‘얼마나 선정적인지’를 본다. 이것도 참 애매한 게 음악성만 살리면 상황이 더 나아지기보단 또다시 지금처럼 될 것 같고, ‘외모’나 ‘선정성’과 ‘유행’을 살리기엔 ‘음악성’이 뒤떨어질 것 같다. 이 때문에 외국 음악이 곧 진리라고 여기는 사람이 생기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한국에도 참 좋은 가수들이 많을텐데. 노래를 즐겨 듣진 않지만 TV(비록 tv도 없지만)를 보거나 인터넷을 할 때 가수들이 얼마나 벗었는지를 알리는 기사보다는 얼마나 노래가 좋은지를 알리는 기사가 많이 나오길 바란다.
음악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가끔 정말 힘들 때 듣는 음악이 있다. 매번 바뀌고 그 때 그 때 달라지지만 요즘 들어 ‘그대 내맘에 들어오면은’이라는 노래가 참 끌린다. 가수 조덕배가 처음으로 불렀고 이후 조성모와 성시경 등이 리메이크 한 곡이다. 이 노래는 전에 인문학 시간에 한국의 음악사를 잠깐 공부하며 들었다. 그 때는 별 느낌도 없고 그냥 좋구나, 라고만 생각했지 ‘찾아서 들어봐야지’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좋아하진 않았다. 그러나 <비열한 거리>라는 영화를 보고 생각이 확 바뀌었다. 나는 느와르 영화를 즐겨서 보진 않는다. 영화를 볼 때 인물에 깊게 스며드는 편이라 해피엔딩이 별로 없는 느와르 물을 보면 씁쓸하고 짜증나고 답답하다. 그러나 그 날만큼은 나보다 더 비참한 사람이 없을까, 해서 본 거라 맘껏 씁쓸해지고 싶었다. 보고 울었다. 조인성이 내가 된 기분이었고 그가 죽었을 땐 세상 모든 슬픔 다 내게 전해들어온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영화를 보고 울 정돈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울었다. 정말 많이 울었다.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보면서 우는 게 이렇게 속 시원하다는 걸 알았으니 참 기뻤다.
영화에서 조인성은 구애하는 마음을 ‘그대 내맘에 들어오면은’이라는 노래 속에 모두 넣어 불렀다(한 때 유행했던 ‘땡벌’도 잠깐 나왔지만 그 노래는 예전에 질리게 불러서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그 노래가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는데 끝나고 나니까 자꾸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OST로 ‘old and wise’라는 노래가 나왔다. 딱 아저씨들이 좋아할만한 노래로 10대 소녀가 듣기엔 끈적하다. 그러나 그 노래마저 계속 찾아듣게 되었다.
노래도 감정을 싣고 들으면 더 잘 들리고 더 애착이 간다. 그냥 지나가다 들었으면 ‘아저씨 취향이다’라고 생각했을 노래도, 한 번 들어봤다가 영화 속에서 마음 깊이 듣게 된 노래도 마찬가지이다. 라디오에선 노래에 얽힌 사연을 말해주는 코너가 있다. 라디오도 잘 안 들었지만 지금부터 들어볼 생각이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사람들은 노래에 어떤 마음을 담고 있을까. 그리고 그 사연을 들은 작곡가와 가수는 얼마나 기쁠까?
인문학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든다. 이제 영어시험도 봐야하는데, 가사들을 외우기 전에 일단 접하게 된 음악들이 어떤 사연으로 태어났는지, 나는 그 음악에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 궁금해진다. 어서 빨리 가사들을 찾아보아야겠다.
한 학기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는데 그 중 음악으로 버텨낸 사건이 참 많다. 음악에 대한 생각이 예전과는 아주 ‘조금’ 달라졌지만, 그래도 말하자면! 음악은 내게 고마운 존재이다.
지난 주 인문학 리뷰 때 주제를 듣고 한참을 생각했는데 나에게 각별한 곡도 없고, 딱히 어떤 상황에 듣는 음악도 없다. 라디오를 듣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사연과 함께 듣고 싶은 음악을 신청한다. 나는 좋아하는 음악들은 있지만 듣고 싶은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가 없다. 그래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내 음악 얘기를 해 볼까 한다.
나에게 음악은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나는 책 읽는 걸 습관처럼 생각하는데 음악 또한 그런 것 같다.
춘천과 서울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 지하철을 타고 길을 걸을 때, 책을 볼 때, 그림을 그릴때. 아무 때나 상관없이 그냥 무조건 듣기만 한다. 귀에서 음악이 들리지 않으면 추운 겨울에 목도리를 안 한 것 같은 허전함과 간이 안 맞는 음식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음악을 들을 때는 책을 고를 때처럼 두근거림이 있다. 책을 고를 때는 앞쪽을 좀 훑어보고 읽을까 말까를 늘 고민하는데 음악을 들을 때도 앞부분을 좀 들어보고 괜찮다 싶으면 계속 듣고 영 아니다 싶으면 다른 음악을 또 찾는다. 어떤 때는 맘에 드는 음악을 찾기 위해서 반나절이상을 CD와 Tape정리함, 카세트 앞에 앉아있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 맘에 드는 음악을 찾으면 가슴도 설레고 자꾸자꾸 듣고 싶은 마음뿐이다.
요즘 나는 주로 피아노곡과 클래식을 많이 듣는데 특히 요즘 들어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들었던 건 ‘eco bridge’ 의 ‘piano riding’ 이라는 곡이었다. TV광고에 나오면서 사람들의 귀에 익숙한 곡인데 처음 듣고 어떻게 이런 곡을 만들 수 있을까, 하며 놀랐고 사람들의 마음이 뿜어내는 그 열정이 부러워졌고 피아노 건반 위에서 숨 쉬는 사람들의 손을 상상하며 그 손과 함께 건반 위를 움직이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아 서울에서 춘천까지 오는 한 시간 반 동안 계속해서 듣기도 했다. 이 곡을 만들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궁금했고, 실제로 피아노 치는 걸 보고 싶기도 했고 나도 저렇게 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밥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책을 보고 화장실에 갈 때도 계속 들었고, 나도 한 번 쳐볼까하는 마음에 건반을 두드리기도 했다. 어떤 음악에 한 번 꽂히면 그 음악을 들으면서 뭘 해도 즐겁고 좋다.
열다섯살 때 듣던 음악들과 열일곱살 때 듣던 음악들이 달라지고 음악에 대한 내 생각에도 변화가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가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악기들이 섞여서 어떤 악기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알 수 없고 비슷하게만 들리는 클래식이 싫었다. 재즈처럼 엇박자보다 딱딱 맞는 음악들이 더 좋았고, 다른 나라와 다른 장르의 음악에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 했고 따분하기만 했다. 그래서 책을 골라 읽듯이 음악도 골라서 들었는데 요즘에는 클래식이나 재즈, 쿠바음악 같은 생소하다고 생각했던 음악들이 더 재미있고, 귀에 착착 감긴다.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면서 그 화면에도 집중을 하지만 좀 더 집중하게 되는 것은 배경음악이다. 그 상황에서 어울리는 음악들인지 생각도 해보고 다시 찾아서 들어보기도 하고 좀 더 알고 싶어서 곡에 대한 해석을 찾아보기도 하는데 내가 찾는 정보가 나왔을 때는 속이 후련하다. 이 음악을 만든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이 곡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어서 좋고 그 해석을 떠올리면서 음악을 들으면 내 나름의 해석도 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음악은 참 중요하면서도 쉽게 넘어가는 부분인 것 같다. 나만 해도 음악을 한 번도 각별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들리면 들리는대로, 안 들리면 좀 아쉽게 생각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은데 음악은 그저 귀를 즐겁게 해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람을 달래주고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노를 쳤는데 (우리 엄마가 무슨 생각으로 피아노를 배우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음악의 소중함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고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좀 더 살다보면 내 인생에 각별한 곡도 생기고 내 이야기를 음악으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아. 세곡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또 삐져나오는 노래들이 몇곡 더 생각나버렸다. 그냥 처음에 생각난 세곡으로 써보겠다. 첫번째 곡은 내 소싯적 초등학교때 들었던 곡인데, 신승훈에 그런날이 오겠죠 이다. 처음 TV에서 뮤비로 접하게 되었는데 그 가사와 음색이 그 어린나이 나의 심금을 심하게 울려주었다. 특히 뮤비가 노래를 더 살려주는 몇 안되는 곡중 하나인것 같다. 마지막엔 정말 눈물까지 맺힌적도 있다. 그덕에 그날부터 만날 그 노래만 듣고 노래방 18번곡이 되었다. 지금 생각컨데 전생에 그런일을 겪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무슨...)
또하나는 박진영의 대낮에 한 이별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이별을 한 후에는 사랑을 회상하는 노래가 심금을 울리곤 하는데 이것도 그러하다.(그 상황에는 정말 노래만한 친구가 없는것같다.) 반주와 특이한 가사들이 나의 특이한 상황에 정확하게 들어 맞아버려서, 이 노래를 들으며 정말 땅을치고 울었다. 요즘에는 이 노래를 들으면 오히려 힘이 나는것 같다, 추억의 노래다. 정말.
마지막곡은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 이다. 요즘에 정말 많이 듣는 곡인데,(밤비가 추천한 그대 내맘에 들어오면은도 요즘 정말 듣기좋다-)재즈반주가 같이되어 트로트같이 느껴지지도 않고 수봉언니의 특이한 창법까지 가미하여 오히려 세련되기까지 하다. 하루에 한버은 꼭 틀어놓고 부르고 잔다. 특히 결정적인 순간에 딱 끊어주는 수봉언니의 태크닉이 언제나 날 까무러치게 만든다.
나는 음악듣는게 좋지만 일부러 찾아듣거나 하진 않는다. 그래서 mp3도 가장 작은 용량인데도 10곡 이하로 들어있다. 감정상태별로 듣는 곡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 도 아니다. 하지만 이효리 - U-Go-Girl 만큼은 예외다.
올해 7월. 집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너무 더웠다. 집 안에 있는 게 밖에 있는 것 보다 더 푹푹 쪘다. 그래서 축 쳐진 상태로 잠자기, 컴퓨터를 번갈아가면서 하다가 평소엔 별로 안보는 티비를 봤다. 그런데 드라마도 별로 재미없고 투니버스에서 하는 만화도 지루했다. 그래서 토요일 일요일마다 하는 가요프로그램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당시엔 원더걸스가 ‘so hot'으로 6주동안 1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랬만에 엄정화가 ’d.i.s.c.o’로 컴백했고, 1위는 아니지만 인기가 많았다. 빅뱅의 탑이 나와서 피쳐링도 해줬다. 이때까진 엄정화가 가장 좋았다. 왜냐면 반짝반짝한 의상이랑 무대랑 뮤직비디오가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엄정화의 지르는듯한 목소리도 좋았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이효리의 컴백기사를 봤다. 지난 2집은 표절논란이니 해서 말이 많았다. 사실 내생각에도 그때 검은머리랑 마리오네트 춤은 이효리랑 안어울렸다고 생각한다.
3집 타이틀곡 제목은 U-Go-Girl이였다. 별 기대 없이 티져영상도 챙겨봤는데 이효리랑 너무 잘 어울렸다. 나는 그때부터 7월19일을 기다렸다.
그리고 19일이 됐다.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시작 전부터 티비를 대기시켜놨다. 그런데 가요프로그램은 꼭 신인이나 재미없는 무대는 일찍 나오고 컴백이나 재밌는 무대들은 후반에 나온다. 드디어 이효리의 컴백무대를 봤다. 음악프로에서 이효리 무대는 정말 신경써서 준비해줬다. 걸어들어가더니 3초만에 그 자리에서 의상이 바뀌었다. 소품이며 의상이며 뮤비에 나온 그대로다. 그리고 매 무대마다 컴백하는것처럼 화려했다. 유고걸은 노래 전개도 신기했다. 처음엔 귀엽게 부르다가 시원시원하게 부르다가 나중엔 목이 찢어질 듯이 부르다가 다시 귀엽게 부른다. 중간에는 전화통화 하는 장면도 있다. 그리고 춤도 시원시원하게 추고 표정이 너무 귀여웠다. 유고걸 한 곡에서 ‘고민고민하지마 춤’이랑 ‘ok춤’등 다양한 춤동작이 인기를 끌었다. 원더걸스의 안소희도 따라했다. 그리고 이 노래의 장점중 하나는 노래 가사가 쉽다. ‘고민고민하지마’랑 ‘De Le De Le That That That Girl’, ‘Baby Baby Baby Baby Girl’같이 반복되는 가사가 많아 외우기도 쉽다. 난 처음 무대와 노래를 듣고 이효리가 30살이라는게 믿겨지지 않았다. 섹시함이랑 귀여움이랑 모두 소화를 하기 때문이다. 노래내용은 남자들한테 어떡하면 잘 보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여자들에게 자신감있게 나가라고 용기를 돋궈주는 내용인데 별 생각없이 들었다. 그저 노래 자체가 신나는 분위기고 시원시원해서 여름 내내 U-Go-Girl을 들었다. 그 뒤로도 티비를 돌리다가, 길을 걷다가 이 노래가 나오면 멈춰서 듣고 간다. 집에서는 가끔 기분이 울적해 질 때 듣는다. 반대로 기분이 아주 좋을 때 들으면 더 흥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여름에 나온 노래라 그런지 가을 겨울에 들으면 그 때의 신나는 느낌이 별로 안사는 것 같아서 당분간은 안들을 예정이다.
그래서인지 딱히 에세이를 쓸 만한 내용이 없다. 어느 한 곡을 들으면서 나에게 각별하다고 생각해 본적도... 또 내가 어떨 때 듣는 한곡과 그 곡에 대한 사연도... 내가 좋아하는 곡들 중에 딱 한 곡만 뽑아 그 곡에 대한 생각을 쓸 만큼 좋아하는 곡도 없다. 그래도 구지 비슷한 내용을 생각해보면 나에게 각별하진 않지만, 평소 내가 음악을 들을 때 내 모습이 달랐던 적은 있다. 바로 "거위의 꿈- 인순이".
처음 내가 이 노래를 듣게 된 건, TV에서 어느 한 프로그램의 앤딩 곡으로 나온 걸로 기억한다. 집에서 왔다갔다, 움직이다가 이 노래의 후렴부분인 "그래요 나~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나를 지켜봐요"이 부분에 TV앞에 앉아 이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기억에 이 노래를 듣고 나도 모르게 울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창피한 생각이 든다. '그때 내가 왜 울었을까' 생각해보면 아직도 왜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그때 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었지 않았나 싶다. 아 그리고 잘 때 항상 듣는 곡은 없지만 꼭 음악을 틀어놓고 자는 습관이 있다. 대부분 조용한 음악을 듣지만, 가끔 소리가 좀 큰 음악을 틀기도 한다. 어렸을 때, 엄마가 항상 자기 전에, 영어테이프를 틀어 주셨었다. 그래서 인지 음악이라든지 TV라든지 소리가 나는 것을 틀어 놓는 습관이 생겼다. 내게 있어 음악이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너무나 현재에 살고있었다. 지금 내가 서있는 이 공간에 대한 기억을 곱씹기보다는 내가 하는 일을위한 당연한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공기와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과거로부터 변해온 나의 공간을 돌아보지 못했다.(그닥 바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런 나에게 save my city는 과거와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나에게 영향을 많이 미치고 미칠 공간에 대해 한번쯤 눈여겨보게 해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해나가면서 실제로 사회에서 나같은 평범한 여자아이는 아무런 권력이 없다는 것이 내 공간을 지키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슬프기도 했다.
오래함께하지 못한 사람들과의 팀작업은 거의 처음이었다. 나는 다른 장소에서 늘 무언가를 이끌어가는 타입이었는데 나만의 어떠한 과제를 가지고 시간과 싸워본것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생각해보면 참 난 널널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글이라는 것은 시간을 소비함과 비례하여 결과물이 나오는것이 아니라는 그 이유 하나 떄문에, 멋대로 내 자리를 이탈하고 언젠가는 삘받으면 써질거라는 핑계로 곧잘 딴짓도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결과가 나왔냐면 그것은 아니고, 이러한 나의 행동은 나중에 결과물이 나왔을 때 과연 이게 내가 참여한 작품인가에 대해, 나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결과물에 대해 실망하게 했다.
그렇지만 난 이번 프로젝트가 참 안하니만 못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또다시 이런 기회가 온다면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노력할것이니 말이다.
난 우리팀의 결과물만큼 다른팀의 결과도 너무나 궁금했다. 그것은 모든팀이 다 그럴것이다. 우리의 키워드는 재개발, 물 등이었는데 다른팀은 어떠했나, 등 궁금한게 너무나 많았는데 우리팀 영상도 그러하듯이 결과 영상만 보고는 도통 무슨얘긴지 잘 감이 안잡힌다. 더군다나 우리는 서로서로 팀마다 중간에 보여주지 않고 마지막에 전시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내 생각에 전시관이 너무나 어수선했던 바람에 우리팀이고 다른팀이고 이해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다들 소신있게 만든 작품들인데 더 깊게 바라보지 못했던게 매우 아쉽다. 만약 우리들만의 작가들의 대화를 할수 있게 된다면 작은것부터 하나하나 캐묻고싶다.
그리고 팀작업 이외에도 느낀게 있는데 미디어축제 전시 당시에 관객들의 보는 눈이었다. 부스가 많고 사람도 많고 시끄럽고 어수선했던 건 사실이지만 관객들은 영상보다는 앉아서 동서남북을 접는 걸 보고 그냥 따라접고 도장을 받아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만들은 나도 영상이 좀 이해가 안갔지만) 그곳의 관객들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작품을 보러온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름대로 만들면서 관객들이 보는 눈도 많이 생각하고 이것은 이해가 안될테니 더 설명을 하자, 등 여러 방식을 써 봤는데 다 허당이었던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나부터 모든것을 주의깊에 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도시를 지켜줘‘ ...나의 도시? 처음 Save my city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첫 물음표였다. 나는 정말 주위에 무관심하다. 사람과 장소 모두. 특히나 장소에 관해서는 길도 잘 기억 못할뿐더러 익숙한 곳조차 그저 ‘익숙함’ 때문에 그다지 크게 자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설사 내가 익숙한 곳이라도 큰 의미 부여조차 없다. 한마디로 애정이 없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물론이고 하자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사실 ‘나의 도시’라는 단어가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고 몸담고 있는 곳들은 있지만 과연 내가 그 안에서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고 할 이야기가 있나 에 대한 고민이 끝없이 머릿속을 휘저으며 괴롭혔다. 202 안에서 회의할 때는 물론이요 동서남북으로 갈린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솔직히 하고는 싶으나 별로 잘 할 자신이 없었다. 처음엔 이런 막막함으로 미디어축제 준비를 시작했던 것 같다.
슬슬 준비가 들어가는 시기가 됬을 때, 202에서 회의를 하고 지하철 노선도를 이용해 작업을 하기로 결정 났다. 그즈음, 팀을 나누고 단기 무한도전(?)을 실행하게 됬다는 갑작스런 통보가 유리로부터 날아왔고 그 통보는 진짜 갑작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갑작스러움이 나쁘다기 보단 좋았다. 사실 202끼리 회의할 때부터 뭔가 작업장 별로 나누기 보단 섞어서 작업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동서남북으로 팀을 나눴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내가 사는 곳에 특별히 흥미나 애정이 없던 난 어딜 가야 하나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내가 사는 지역을 관심 있게 다시 보고자 동쪽을 택하기로 했다. 고로 동팀에 속하게 되었고 그렇게 동팀 즉석 첫 회의가 이루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처음 작업하는 동팀 일원들과 생각보다 훨씬 재밌게 작업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나는 작업물보단 작업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다 같이 즐거워야 한다는 마인드로 임했다. 그 안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온라인으로 회의도 하고, (개인적으로 해보고 나니 정말 좋지 않긴 했지만) 답사도 가고, (비록 답사는 마지막에야 참여하긴 했지만) 예상보다 나름대로 수월하게 일이 진행 되어감을 보며 맘이 놓였다. 그 안에서 점점 내가 ‘내가 사는 도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는지, 그리고 팀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윤곽도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느새 막막함과 부담보다는 즐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솔직히 이대로 계속 축제준비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추운 날씨에 많이 힘들었을 텐데도 하루 종일 촬영에 열심히 뛰어준 동팀 일원들에게도 고마웠다. 다만 올해 첫눈을 그들과 맞게 돼서 흠.... 그냥 좋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좋았음!
모든 준비를 서서히 마쳐갈 때 드디어 설치 날짜까지 성큼 다가와 버렸다. 준비 기간도 굉장히(?) 짧았지만 서도 막상 이렇게 되니 느낌이 묘했다. 축제 오픈 당일 가서 생각보다 쌈박한 셋팅에 솔직히 놀랐다. 그동안 옹기종기 모여서 열심히 접은 동서남북과 거기에 둘러 쌓여 누워있는 커----다란 벽테레비가 예뻐 보였다. (도장은 두말할 것도 없고! A4용지에 하나씩 다 찍어봤음) 촌닭들의 공연도 조금 싱겁다 싶던 축제의 흥을 한껏 올려주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작업물을 보고 공감대를 느끼며 흥미를 가질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을 놓아두고 촬영을 위해 점심을 섭취한 뒤 하자로 향한 기억이 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그러나 역시 짧았던 것 같은), 끝나지 말았으면 했던 미디어축제가 끝나고 지금은 곧 다가오는 쇼하자라는 또 하나의 장벽이 검은 도화지 마냥 앞을 까마득하게 만들었다. 항상 이런 식이다. 무언가 할 때면 마치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까만 스케치북을 받아 든 기분이 든다. 그 안을 새로이 내게 주어진 것들로 채워가야 하는 과제가 부끄럽지만 지금까지도 막막한 짐덩이다. 특히나 이번 축제를 준비하면서 그걸 심하게 느꼈고 고민했던 것 같다. 하지만 또 언제나 그랬듯이 같이 채워가는 것에서 많은 설레임이 찾아오고, 개인의 부분에서 즐거움이 생긴다. 앞으로 남은 도화지에 이번 미디어축제도 한 일환이 되어 재료로 쓰이겠지. 무채색이 아니라 밝은 색이라 다행이다.
쓸고 지나가면 그저 되겠지만 그 안은 되지 아니했다 저기 반짝이가 보이는지 너는 하늘 만치 총땅 한 것이 남긴 산물 머리맡을 기대고 같은 잠을 자겠지 하지만 잠은 다를거야 그렇지 뭉텅 들고 놀러가도 되겠니 반짝이 좋지 않다 하여도 어쩔 수가 없구나 그 안에서 너의 잠을 청하는 너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지
일단 써보았어요. 안올라가서 다시 올려요. 다들 빨리 올리시고 내일 얘기합세다.. 피곤하여라ㅠㅠ그래도 오늘 촬영은 다 끝냈으니 상콤상콤 앞으로 남은 것도 홧또로롤롤로